영조 조선 후기 제21대 왕 가장 장수한 왕 영조의 업적 탕평책 애민정치
--------- 목 차 --------
1. 조선 후기 제21대 임금 영조
2. 영조의 업적
3. 마무리
1) 조선 후기 제21대 임금 영조
조선 후기 제21대 왕 영조는 재위 기간이 1724~1776년으로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왕입니다. 즉위 과정과 즉위 후에 왕위 자체를 부정당하는 당쟁의 폐해를 몸소 체험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탕평책을 적극 구사하여 국정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나이가 균역법실시 등 국정운영을 위한 제도 개편과 문물 정비 등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하여 민생안정을 통해 민심을 추스르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후 묘호는 영종이었으나 고종 때 영조로 고쳐 올렸습니다. 능 호는 구리시에 있는 원릉입니다.
영조는 숙종과 인현왕후를 모시는 몸종이자 궁녀의 옷을 빨던 무수리 출신이었던 숙빈 최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왕실 최초이자 유일하게 왕세자가 아닌 왕세제로서 왕위에 오른 왕입니다. 다시 말해서, 혈연적으로는 숙종의 아들로서 직계비속이지만 공식적으로는 경종의 이복동생으로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영조는 서출이자 방계로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정통성에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모친 숙빈 최씨는 궁녀의 허드렛일을 도맡는 무수리 출신입니다. 형 경종의 재위 도중에 신임 옥사가 일어나면서 죽을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1724년(영조 즉위년) 30세 다소 늦은 나이에 즉위했지만, 영조가 80세를 넘길 정도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영조의 치세는 장장 52년에 달했는데 이는 조선 왕조 역사가 있어 최장 집권에 해당하며 역대 조선의 국왕 중 가장 장수한 왕입니다.
영조의 이름은 이금, 자는 광숙, 호는 양성헌, 숙종의 세 아들 중 둘째이며, 어머니는 화경 숙빈 최씨입니다. 비는 사종 제의 딸 정성왕후이고, 계비는 김한구의 딸 정순왕후입니다.
☆ 사도세자의 비극:
영조의 재위 기간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는 1762년 그의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은 여전히 논쟁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본명은 이선입니다. 형인 효장세자가 일찍 병으로 죽은 후 얻은 귀한 아들이라 태어나자마자 원자로 칭해지고 2세 때 세자에 책봉되어 조선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세자로 책봉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눈 밖에 나서 엄한 꾸지람 등을 들으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그 당시 정국도 불안정한 상황이었기에 여러 가지 이유로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세자로 만들고 뒤주에 가두어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게 했습니다.
훗날 영조는 아들을 생각하고 사도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요절하다 라는 뜻으로 사도세자라고 시호를 내렸습니다.
2) 영조의 업적
영조는 탕평책을 시행했습니다.
탕평책은 조선 후기 영ㆍ정조 시대에 당쟁을 막기 위해 당파 간의 정치세력의 균형을 꾀하려 한 정책입니다.
영조는 당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썼습니다.
탕평책의 목적은 당파들의 세력을 약화하고 왕의 권한과 권위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영조는 탕평책을 강조하면서 당쟁의 온상이었던 성균관 입구에 직접 글을 써서 탕평비를 세웠습니다.
영조는 민생안정과 산업진흥을 위한 개혁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영조는 속대전 등을 편찬해 법치 체재를 재정비함과 동시에 농업정책과 수취제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처를 내리는 등 재위 기간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3) 마무리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는 가장 오래 산 임금으로서도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 정치를 한 임금으로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TV 드라마 '동이'를 통해 영조의 어릴 때의 총명함과 영특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조의 치세 때 아들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아쉽습니다.
아버지 숙종의 왕권 강화 정책을 보고 자란 왕이었기에 재위 시절 나름의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었고 후에 정조가 올바르게 나라를 끌어나갈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들어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즘의 정치 세계를 보면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연금까지 받는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을 위한 정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누리고 싶어 정치를 하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훌륭한 리더는 이런 난국을 현명하고 슬기롭게 끌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지금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도 세상을 올바르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자세를 키워줘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습니다.
나라의 미래가 평화롭고 안정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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